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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훈

안녕하세요. 배우 권정훈입니다. 〈오차의 범위: 정류장들〉에서는 조금 다른 일거리로 관객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동료 작업자들을 순차적으로 만나고 있고 하나하나 이야기들을 나누고 기억해 내고 있습니다. 마치 기차와 같은 모습일까요? 서로의 이야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낮밤 없이 달려가는 상상으로 벌써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누군가는 선로를 깔고 누군가는 연료통에 석탄을 쏟아 넣는 일을 나눠 갖겠지요. 아마 관객 여러분도 기막힌 역할을 나눠받으시겠지요? 그럼, 극장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그레이스

제주에 살며 시청각 연구와 논픽션 영화 작업을 합니다. 카메라를 매개한 관계 맺기와 몸으로 기록하는 다양한 방식, 정동의 기록, 기억의 활성화를 통한 돌봄과 협업의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여행 중 만난 낯선 이와 의도치 않은 마음을 나누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공명하며 뜻밖의 상태로 전환된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풍경의 조각들로 촉발된 대화는 공기 중으로 분사된 물방울 혹은 여러 갈래로 나뉜 나무의 잔뿌리를 타고 수만 개의 가능성으로 흩어졌다가, 아주 우연히 화자의 몸 어딘가 저장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들로 이어집니다. 


다이애나밴드

태어난 적도 없고, 딱히 죽을 일도 없다. 존재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신하고 있으며, 남겨진 것들이 원래부터 있던 것인 양 행세한다. 바람이 부니까 숨도 쉰다. 아니다, 밥을 먹어야, 숨도 분다. 열차는 멈춰서고, 선로는 달린다. 원이 있으므로, 점이 있다. 아니다, 펜이 있어서, 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아니다. 이루어진 것들 중에, 생각을 고른다. 열하나, 열, 아홉, 여덟, 이른, 여름, 밤, 대상.

매체와 상황에 관심이 많고, 사운드와 기계장치들을 주로 사용하며, 수치들과 물질들에 뒤엉켜 있는 작업자.


배선희

배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그리움이 커다래진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사람. 종종 쓰고 연기한다. 이제는 삶과 연극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새를 많이 좋아한다. (이 극장에서는) 동영상의 비밀번호가 ‘sunhee’인데 입력하면 곧바로 태국에 갈 수 있다. 차비는 어느 때나 아무한테나 빌릴 수 있고, 식빵 한 쪽을 단번에 삼키는 큰 개를 만나거든 노래하는 촛불을 켜면 된다. 숲에는 나무가 있고, 버섯이 있고, 지의류가 있고, 고사리가 있고… 눈을 감았다 뜨면 기도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나타날 것인데, 그의 왼편엔 쇼핑백이 벌어져 있고 오른편엔 성모마리아 상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잠시 후, 따라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돼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백종관

영상과 글을 통해 경험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계속해서 변주해 나가고 있습니다. 경험은 어디에서 무엇을 마주치는지의 여부도 중요하고,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나’의 상태 역시 중요합니다. 자료와 기억들을 꼼꼼히 돌아본 이후라면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지식과 가슴 속에 피어난 감정들이 ‘여기’의 모든 경험을 새로운 자극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 자극을 통해 즉각적인 쾌뿐만 아니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질문들을 함께 구성하고자 합니다. 

몇 개월간 낯선 도시에 머물며 그곳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너무나 다릅니다.  


오로민경

사람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소리의 풍경을 듣고 마주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하며 잘 듣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  

‘이야기'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두게 된 때는 몸이 아픈 후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이야기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숲은 계속 풍요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이야기’가 모닥불처럼, 작은 빛처럼 ‘그러니깐 살아가’라고 노래를 전하는 모든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을,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배우고 있다. 그 시간, 우연과 필연 사이 행운처럼 만난 그 풍경들을 모으고, 다시 읽고, 소리 내보고자 한다.


허윤경

몸과 움직임을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점으로 만나면서부터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담을 듣기 위한 작은 여행들이 이어졌다. 마치 어떤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드는 것과 같은 점과 선분의 지도가 만들어지는 것도 같았다. 즐거웠던 건 매번의 시간들이 여행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넘쳐흘러, 이어지는 일상의 장면들까지 각각의 정류장들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행담들은 내 안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포착하는 관점이 되어 나만의 ‘다음 행선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대화는 목적지 없는 중간지점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서로의 옆쪽 윤곽을 내어주고, 공간을 몸으로 휘젓기도 하며. 같은 이야기를 통해 다른 곳을 다녀오는 한편, 다른 곳에서 같은 징후들을 읽으며 공간이 접힌 듯 함께 있기도 하며.